삶이 힘들어서 일본을 오고자 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말.(뒷골목 만화가님께)

내 블로그사이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나를 광고하기 위함도 아니고,


블로그사이트를 통해서 영업을 할 생각도 없다.


번번히 말하지만, 나는 일본컨설팅 업자가 아니며, 


내가 쓰는 글들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솔직하게 경험하고 느낀 바를,


같은 한국인들끼리 공감하고, 지식을 나누면서, 함께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성되는 글이다.





따라서, 


일본을 갈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는 질문 댓글에는 개별적인 답을 줄 수 없으며,


언제나 포괄적인 글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자에 대한 문제는, 비자 전문 행정서사들이 있으므로,


가능하다면, 자격증을 갖고 등록된 행정서사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브로커 업자가 아니므로,


나에게 500만원을 줄테니, 일본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을 남긴다 한들. 나는 답을 줄 수 없으며,


그러한 질문글에는 미안하지만, 답변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난 독자와 함께 글로서 공감할 수는 있지만,


독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인정보인 이메일을 내 블로그에 남기면, 다른 상업적인 목적으로 누군가가 악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내 블로그 사이트는 일부러, 승인절차를 통해서,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악의적인 목적의 광고글,  업자라고 추정되는 글은 일부러 지운다.


따라서, 질문에는 개별적으로 이메일로 연락할 수 없으므로, 이 점 양해를 바란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나 역시, 정말 한국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사람이었고,


반지하방에서 샤워실도 제대로 없는 집에서 편부모 가정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학교에 가서도, 언제나 놀림과, 왕따를 당하기 일수였고,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불우한 학생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과자와 같은 선물세트를 주는 명단에는 언제나 나의 이름이 있었다.


방학이면, 학교에서 이상한 조별 숙제를 내주는 일도 있었는데,


언젠가 한번은, 다른 친구들 부모들 모두 자기집에 오는 것을 희망하지 않았던 탓인지,


우리집을 한번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세면대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우리 집을 보고,


뒤에서 나에 대한 놀림감거리로 삼았으며,


한국에서의 하루하루의 삶은 정말 괴로울만큼, 짜증이 나고, 학교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당시 우리 아버지는 혼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나를 먹여 살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그런 학교에서의 일을 아버지에게 분풀이하고,


매일 신경질을 내면서 그렇게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아버지는, 회사 택시일을 하면서, 일정 년수 요건을 채운다음에 개인택시이거나, 


용달 트럭을 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나의 이러한 불평에도 아랑곳 없이, 묵묵히 택시일을 하며, 내가 학교를 가기전이면,


밥 사먹으라면서, 만원짜리 한장을 항상 남겨주셨다.


당시, 학교에서는 나를 제외한 많은 친구들이 핸드폰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핸드폰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핸드폰을 사달라는 말 한번 한적도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다.





나는 가난한 가정이었던 탓에 언제나, 국가에서 주는 공짜 학비를 받을 수 있었고,


언제나, 선생님에게 사정해가면서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만일 내가 대한민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본인이 노력하면, 어느정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다. 이건, 내가 일본에서 살면서,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택시일을 하면서 언제나 새벽에 집에 들어오셨다.


지금 30대가 된 내 나이에서 직장생활, 사업을 해본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아버지는 하루 14시간 가까이를 밖에서 택시일을 했던 것이다.


월 200만원(당시에는 큰돈이라 한다.)이상의 월급을 받으면, 


청약주택 적금을 들어가면서, 적어도 제대로 된 집을 한 개 갖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그런데, 왜일까.


세상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공부밖에 없다고 믿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택시일을 하면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아버지는 장애인 판정을 받고, 그나마, 당시의 목표였던, 개인택시의 꿈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의 나의 목표하던 대학 진학의 꿈도 사라졌으며,


대학교를 진학해도, 학비를 낼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며,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기회의 나라다.


당시 나는 돈 한푼 없었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었지만,


내가 공부한 만큼, 성적을 낮추어서 대학을 선택한 탓에 공짜로 대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으며,


4년동안, 학비를 내는 일 없이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군대도 정상적으로 다녀왔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에는 이런 한국과 같은 장학금 제도가 없다.


말은 장학금이라고 하지만, 학자금 대출과 같은 빚과 동일하며,


대한민국은 적어도, 본인이 열심히 한만큼,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공부한 만큼, 


교육의 기회가 있고, 흙수저들에게 있어서는 일본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공무원이든, 사업을 하면서, 자리를 잡고 일본을 여행으로만 다녀가는 길을 선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인터넷 상에서는 많은 업자들의 광고글이 보이지만,


일본이 살기 좋다고 하는 사람은 일본이라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며,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와중에, 그저 운좋게, 일본인과 결혼을 하거나, 일본인의 사적인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복지 환경이 잘 되어 있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을 것이고,


제대로 된 직업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대학교도 공짜로 졸업할 수 있었고,


그 대학교 졸업장 덕분에, 일본 비자문제도 없었으며,


일본에서 그나마, 어떻게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인생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해서, 살아가는 길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일본에 왔을 때에는, 인생을 역전할 것마냥, 자랑하면서 일본에 왔지만,


정작, 수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는 나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친인척들, 친구들이 더욱 잘 살아가고 있다.


당시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던 친구 중 한명은 고졸 학력이지만, 군대 부사관으로 돈도 꽤 모으고, 가정을 이루며, 잘 살아가는 친구도 있으며,


나의 친인척들 중에는 트럭 한개를 갖고, 전국에 있는 모텔을 돌면서, 생수를 납품해서, 지금은 빌딩을 소유한 친척도 있다.


나 역시 가족이 미웠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서, 나의 대학교 진학은 물거품이 되었던 것 같았지만,


길은 있었으며,


사고난 아버지가 노점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온갖 창피를 다 당해가면서,


같이 노점일을 하면서, 기존 노점상들과 치고 박고 하면서, 온갖 욕을 다 들으면서 그렇게 살아간 적도 있다.


그 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아버지 삶의 최선을 다했던 것이며,


그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원정녀라는 등, 술집에서 일하는 한국여자들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과연 그 사람들 모두가 다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나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그 중에서는 자신의 그런 경험 탓에, 자식을 위해서, 교육에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하는 한국인 여성도 있다.


성을 사는 남자들에게도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인 들중 돈 많은 사람 치고, 애인 없는 남자는 없다.


문제는, 이것을 한국인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본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많다며, 허영을 떤 일본인 남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라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본에서 살아가는 50대에 가까운 한국인 여성 중에서,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여성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일본인과 만나고 결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일본인과의 결혼이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면, 분명 무언가, 밝히고 싶지 않은 사연들이 제 각각 있다는 것을 알길 바란다.


그래서일까?


일본 생활을 하면 할 수록,


나는 일본인에게 빌붙어 가면서, 다른 한국인을 깔보고, 무시하고, 엎신여기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싫다.


자신의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남의 현실을 깔보면서, 미래를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일 수록,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더 거리를 두게 된다.


이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삶이 힘들다고 일본에 오면, 인생이 편하게 풀릴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세금을 많이 내도 문제 없다고 한다면,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는 인간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나라였으며,


적어도, 다른 조선족, 동남아시아인들이 오고 싶어하는 나라 중 한개의 나라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따라서, 삶이 힘들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고,


시간을 두면서, 더 준비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길 바란다.


군대 입대할 때에는 제대하는 날짜가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 없이 제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3년이라는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3년만 딱 버티면서, 무언가에 미쳐가면서 최선을 다해보길 바란다.


공무원 공부이든, 자격증 공부이든. 무엇이든 괜찮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다 역시, 일본에서 온갖 뒤통수와 멸시, 모욕을 다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아까워서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나 역시 밝히고 싶지 않은 많은 실패를 일본에서 겪어왔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쪼록,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며,


동일한 시간에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함께 잘 되기를 바라는 바람이다.


나도 잘 될 수 있고,


내 블로그 사이트에 글을 남겨준 독자도 잘 될 수 있을 거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어차피, 나보다 먼저 죽는다.


그러니까, 너무 낙담 말기를 바란다.


그런 가족에게 주는 돈이 그나마, 나라에게 빼앗기는 것보다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함께, 천천히 노력하면서, 성공하자.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카부시키 쇼켄

 

 

본 블로그의 목적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한국인의 삶의 방향"에 참고가 되고자 함에 있습니다.

 

 http://www.japan-story.biz/ [나 일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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